배우들의 대사가 절규처럼 들린 "로마가 불타도 연극은 계속 돼야".. 오은서 2020.09.28 07:19



 

연극 '외설적인'의 막바지, 극작가의 거실 뒤로 비가 내리면, 서로 사랑했던 극 속의 두 여자

 

 '망케(박서영)'과 '리프켈레(강민지)'가 그 비 속에 서로를 안는다. 근래 보기 드물었던 폭발적 클라이맥스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래서? 로마가 불타고 있는데 당신은 연극을 올리길 원해?”

 

2차 대전의 불길이 겨우 가라앉은 1952년 미국 코네티컷, 일흔 넘은 극작가 남편 ‘숄럼 아시’(최무인)가 말했다. 평생 함께해온 아내 ‘마제’(홍윤희)가 남편의 냉소를 맞받았다. “로마는 항상 불타고 있었으니까요.”

 

코로나 시대 공연인들의 마음이 담긴 듯한 대사에,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낮은 탄성이 객석 사이로 번졌다. 연극 ‘외설적인(Indecent)’이 공연된 25일 저녁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지난 16일 개막해야 했던 이 연극은 공공극장 셧다운이 길어지며 끝내 취소됐다. 이날은 영상 촬영을 위해 소수 관계자만 참석한 채 진행한 비공개 공연. 무대 위 배우들은 ‘로마가 불타고 세계가 위기에 처할수록 연극과 예술은 더 절실히 계속돼야 한다’고 웅변하는 듯 필사적이었고, 600석 극장에 드문드문 앉은 ‘관객’ 30여 명의 갈채는 이심전심으로 더 뜨거웠다.

 

연극은 폴란드계 유대인 극작가 숄럼 아시(1880~1957)의 연극 ‘복수의 신’에 관한 실화를 가상의 한 극단 이야기로 풀어간다. 유대인 사창가와 여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며 1906년 독일 초연 때부터 공연마다 풍파에 휩싸였던 연극. 홀로코스트의 재 속에서 되살아나듯 등장한 배우들은 유대인 비하라며 비난받은 유럽 시절부터 외설죄로 옥고를 치른 미국까지 소수민족 언어의 한계, 인종 차별, 사회적 무지,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의 기개를 꺾고 타협하려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극의 막바지, 나치 치하 폴란드 다락방에서 유대인 식별 표지 노란 별을 가슴에 달고도 연극을 계속하던 배우들이 끝내 쓰러지면 대극장 무대 뒷편으로 비가 쏟아지고, 서로 사랑했던 극 속의 두 여자가 그 빗속에 서로를 안는다. 아름다운 클라이맥스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 ’아르코 파트너' 4명 중 유일한 연극 연출가 이동선이 201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그해 토니상을 받은 동명 희곡을 무대로 옮겼다. 실화와 픽션을 영리하게 뒤섞고 보드빌 스타일의 노래, 음악, 춤을 더했다. 국립극단 단골 주역 박윤희 배우의 명불허전 명연, 희곡 속 두 여자를 연기한 신인 박서영·강민지 배우의 순수한 간절함이 빛난다


기사입력: 2020/09/28 [07:19]
최종편집: ⓒ 국민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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