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익부 빈익빈 심화... 독립영화, '공정'을 묻다 서장훈 2019.10.09 08:43



 

[독립영화정책 이대로 괜찮나] 예외적 흥행이 전체 왜곡

지난해 실질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는 194편, 이중 독립예술영화는 114편이었습니다(2018년 영진위 통계 기준). 1년 극장 관객 수 2억 명을 돌파했음에도 한국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은 언제부턴가 100만 명 언저리입니다. 잘 만든 독립영화라도 1만 관객 모으기도 어렵다는 호소가 나옵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 산업시스템에서 한국 독립예술영화 정책이 소외돼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국내 독립영화 각계의 목소리를 싣고 함께 실질적 대안 마련을 고민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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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항거>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OOO, 며칠 만에 100만 돌파!'.

최대한 빠른 기간 내 일정 관객을 돌파하는 게 흥행의 필수 요소가 된 지 오래다. 2013년 이후로 국내 극장가 총관객 수는 2억 명을 돌파했고, 천만 영화 역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극한직업> <기생충>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알라딘> 등 4편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가 나왔다. 이에 따라 2019년 상반기에 극장을 찾은 관객 수 역시 1억 932명(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상반기 결산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수치상으로는 분명 호황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 저예산·독립영화는 점점 찾기 힘들다. 올 2월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115만을 넘었으니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반문할 수 있다. 2018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기준 한국 독립·저예산 관객 수는 총 110만여 명이었다. 1년간 총관객 수다. 의미와 작품성을 함께 챙긴 <항거>의 흥행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단 한 작품의 큰 흥행 외에 유의미한 단위로 관객과 만난 한국 독립영화를 2019년 상반기에 거의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독립영화에도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회 오빠>(9만 4천 명)와 <로망>(7만 9천 명)이 있긴 했지만, 전자는 기독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흥행세를 탔고, 후자는 총제작비 15억 원 규모로 사실상 중저예산에 속하며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엄격하게 따지면 <항거> 또한 메이저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일부 투자 및 배급을 맡았기에 온전한 독립영화로 볼 수 있는지 이견이 있다.

독립영화 흥행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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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 대명문화공장

 



규모 면에서야 작고 약해 보일지언정 한국 독립영화는 꾸준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관객 수를 늘려오며 나름 자생력을 키워오고 있었다. 2009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독립영화 극영화 부문 최초로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같은 해 개봉한 <워낭소리>는 독립영화 사상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10년엔 <울지마 톤즈>가 44만 관객을, <경계도시2>는 배급에서 문제를 겪으면서도 1만 관객을 넘기도 했다. 2011년엔 <혜화, 동> <무산일기> <트루맛쇼> 등이 각각 1만 관객을, <파수꾼>이 2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독립영화계 나름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다관왕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독립영화는 거대 예산이 들어간 상업영화와 경쟁에서도 나름의 입지를 다지며 성적을 내곤 했다. 2013년 <한공주> <족구왕>이 각각 22만, 4만 6천의 성적을 냈는데 <족구왕> 경우는 당시 여름 대작 <군도:민란의 시대> <명량> 등과 경쟁 상태에서의 기록이라 더욱 특기할 만하다.

특히 같은 해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을 동원하며 그간 독립 다큐멘터리 1위 기록을 갖고 있던 <워낭소리>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작품의 의미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영화를 꾸준히 찾는 관객의 요구를 배급사와 극장이 적극 수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최근 갈수록 천만 영화가 나오는 주기는 빨라지고 그 숫자 역시 늘고 있는데 독립영화 쪽은 그 반대다. 지난해 이후로 독립영화계에선 "1만 관객을 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나오고 있다.

한 독립영화인은 "이례적인 흥행이 마치 전부인 양 지나가고 마는데 언제까지 예외적 사례가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양 위안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상호 의원이 내놓은 스크린 상한제가 포함된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도 독립영화계는 소외돼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떠난 열차인가, 아직 오지 않은 열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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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 ⓒ 롯데컬쳐윅스,엣나인필름

 



기관이 주축이 된 독립영화 지원 정책의 역사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진흥공사의 '소형·단편영화 제작지원사업'의 시작 이후 20년이 지났음에도 현장에선 여전히 독립영화인들의 요구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에 따라 정책 역시 쉽게 폐지되거나 신설된 탓이 크다.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공유되고 있지만, 정책과 실제 산업 간의 괴리는 여전하다.

그간 영진위 주축으로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 제도가 폐지됐다가 부활하기도 했고, 박근혜, 이명박 등 보수 정권 하에선 '블랙리스트' 작용으로 사회비판적 독립영화들이 차별을 받기도 했다.

이 와중에 정치권에서도 나름 공정한 환경 조성을 위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긴 했으나 2016년 안철수, 도종환 의원 발의 이후 지금까지도 국회 입구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의원이 '6편 이상의 영화를 동시 상영할 수 있는 복합상영관에서 프라임 시간(오후 1시~11시) 대에 같은 영화 상영 비율을 50% 이내로 제한'하는 이른바 스크린 상한제를 위시한 영비법 개정안을 제안했는데, 여전히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마저도 과연 개정안이 한국독립영화를 시스템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기획 개발 지원과 후반 작업, 유통에 이르기까지 물량 공세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을 실제적 시스템이 희미해진 상황이다. 아무리 자유경제체제라지만 지금의 산업 환경에서 공정한 경쟁이란 게 가능할까. 문화 다양성의 보루인 한국독립영화를 잘 보호할 수 없다면, 오랜 시간 살과 뼈를 갈아 활동해온 독립영화인들의 성과를 지워버리는 것과 같은 건 아닐지.

그나마 다행일까. 하반기 들어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김보라 감독의 <벌새>가 각각 5만과 10만 관객을 돌파했다(10월 1일 기준). 이들 영화는 나름 악조건을 딛고 저예산·독립영화 시장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또 하나의 '예외 사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오늘부터 며칠간 '독립영화정책 이대로 괜찮나' 기획을 시작한다. 제작, 연출, 배급 등 각 분야별 독립영화인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다.


기사입력: 2019/10/09 [08:43]
최종편집: ⓒ 국민정책평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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